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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종교, 타인에 대한 믿음에 대하여

명상

학생 시절에는 간혹 명상을 했다. 책이나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라 하기도 했고, 불규칙하지만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몸에 익은 방식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논하기 어렵다. 살면서 많이 잊어버렸고, 기억이 난다 해도 그것이 정확한 기억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어느 유튜브 영상을 보고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대단한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게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 전제는 간단하다.

생각과 의식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든, 의도적인 것이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호흡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그저 의식하기만 하라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하면서 나는 내가 ‘의식’이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머리가 그냥 켜져 있는 상태
  • 오감이나 생각 중 하나를 의도적으로 붙잡는 상태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강의에서도 말했듯이 설명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

무언가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 호흡이든, 소음이든, 감정이든 무엇인가가 올라오고 사라진다. 그것을 최소한으로 인지하는 상태에 가까운 것 같다.

중요한 점은

  • 그것을 억지로 비우려 하지 않는 것
  • 떠오르는 것을 무시하려 하지 않는 것
  •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외부 감각이든 떠오르는 이미지든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의식을 흩어지게 두면서도 어딘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설명하려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효과를 떠올려 보면 이런 느낌에 가깝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의 상태.

꿈에서 막 깨어난 직후 우리의 머리는 아직 일상의 자동화된 사고 패턴에 들어가지 않는다.

꿈의 잔상이 잠깐 남았다가 사라지고 걸음도 약간 비틀거린다.

일상에서는

  • 걷기
  • 먹기
  • 읽기
  • 쓰기

같은 행동들이 백그라운드에서 자동으로 돌아가지만 그 순간은 그 자동화가 아직 완전히 작동하지 않는다.

컴퓨터로 비유하면 이런 느낌이다.

전원은 켜져 있고 키보드 입력도 정상적으로 먹는다.

하지만 아직 어떤 프로그램도 실행되지 않은 상태.

RAM, ROM, CPU는 모두 켜져 있지만 점유율은 거의 없는 상태.

나는 명상이 그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 화장실에 갈 때
  • 출퇴근하며 걸을 때
  • 밥을 먹을 때
  • 누군가의 잔소리를 들을 때

같은 일상의 짧은 시간에 적용할 수 있다면 머리를 충분히 쉬게 하고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나는 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 싶다.

과거에 나는 분명 기독교인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짧지만 몇 년 동안 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고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경과 기독교 문화에서 분명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 현대철학
  • 자연철학
  • 불교

이런 것들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보다 더 많은 사유와 탐색을 이 영역에서 경험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적 전제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 전제가 가진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religion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어원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을 다시 묶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교라는 단어는 보통

  •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 혹은 진리에 대한 가르침

두 가지 의미 사이에 놓여 있다.

니체는 불교가 타락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종교들이 종속적인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교는 원래

스스로를 위한 가르침

즉 개인의 깨달음에 가까운 철학이었다.

그래서 니체는 이것을 귀족 도덕의 범주로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 신격화된 존재
  • 내세
  • 메시아적 존재
  • 윤회

같은 개념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면서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노예 도덕의 형태로 변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라기보다 니체의 글을 읽으며 내가 이해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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