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크 (Peak) 이기호 · 해이수 · 김설아 외 / 현대문학
이 소설집에 이기호님의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이 실렸다고 한다.
온실 안의 나른함 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할까? 할 일이 그다지 없는 20대의 어느 순간에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흔한 일일 것이다. 목적지향적이고 대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상황이 어려워도. 30대 이후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는 20대의 시간 중에서 앞서 말한 안드로메다로 가는 순간을 많이 만나온 것 같다.
그러한 순간마다 장르문학에 빠져들곤 했는데, 가벼운 느낌으로 보는 소설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가벼운 것들은 감탄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정말 재미있는 걸작들은 나를 음습함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공자님이 일일삼성(一日三省) 하라고 했는데, 기분 전환을 하고자 놀고 있는 와중에 일일삼성을 하는 것은 너무 우울하다.
그러한 와중에 내 마음을 환기시켜준 작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기호님의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이다.
둥둥 떠다니다 멈추어버린 정말 멍한 상태에서 나 또한 하루를 말려버릴 사건들을 여러 번 겪었는데, 그때의 일을 일기로 남겼다면 이 소설과 무척 흡사했을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씩씩”거렸는지 자문한다. 내가 이를 일기로 썼다면 소설과 마찬가지로 정답을 빼고 자문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빼앗아 본 것처럼, 남이 볼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야 할 텐데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에 치여 일탈의 공상에 빠지고 이를 실천하려는 것을 직접 말한다는 것은 참 창피한 일이다.
주인공의 공상은 결국 팬티인지 알 수 없는 반바지에서 윤리적으로 끝난다. ㅋㅋㅋ
어제 짜증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늦은 시각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 했다.
오늘의 짜증나는 일과는 전혀 다른 판타지를 기대하면서 후배 녀석에게 “지금 나가려고요.” 라고 한마디 했는데 소설에 나오는 형의 한마디 **“정신 차려라”**와 똑같은 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옷을 다 챙겨 입고 방에 가서 그냥 잤는데 또 한 소리를 들었다.
“나갈 것처럼 옷을 입더니 그 차림으로 자게요?”
음… 일탈의 공상을 꿈꾼 나에게, 판타지를 기대한 나에게 이를 이해하고 표출시키려는 노력조차 못 하게 하더니 결국 주인공의 형이 하던 말 **“미친 새끼”**와 비슷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왜 나가려고 했는지 자문하면서 잠이 들었다.
공부와 일이란 당연히 해야 할 것이기에 접어두었고, 나에게 일어나기 힘든 해피한 일들을 정답처럼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내게는 밖으로의 발걸음, 마주치는 시선, 목적 없이 배회하며 나누는 몇 마디의 대화가 윤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윤리를 깨려고 노력하겠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