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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혹은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겁함과 철없음에 대하여

청년이라 불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래도 아직은 성숙보다는 성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연을 쫓는 아이』를 읽으면서 아직은 ‘바바’나 ‘알리’가 아니라 ‘아미르’일 수 있는 나 자신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아끼는 후배와 서로 책을 선물했다. 나는 문피아에서 활동하는 캔커피 김지훈 작가의 SF 소설 **『더미』**를 선물했고, 후배는 **『연을 쫓는 아이』**를 선물해 주었다.

『더미』 역시 훌륭한 작품이지만 『연을 쫓는 아이』가 주는 감동에 비하면 조금은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캔커피님의 팬으로서 죄송한 말이지만, 『연을 쫓는 아이』는 그만큼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아미르는 자신의 비겁함과 비굴함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바바를 답답해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하고 존경한다.

아미르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바바가 짊어지고 있던 하산과 관련된 죄 위에 또 다른 죄를 더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비겁함과 비굴함에 크게 실망하고, 그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게 된다.

나중에 그 원죄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동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바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은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보여준다.

만약 이 길이 쉽게 해결되는 이야기였다면 『연을 쫓는 아이』는 지금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해결될 것처럼 보이면서도 계속해서 어려워지고, 바로 그 점이 독자를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결국 이 소설은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길의 끝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르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어 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 끝에 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의 단서를 매우 아름답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문피아의 어디선가 어른과 아이의 차이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른은 결과를 받아들이고 아이는 그것을 해결하려 한다.

다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무리하면 결국 걸어가야 할 길을 무릎으로 기고, 결국 배로 밀며 가게 된다는 말이었다.

아미르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자의든 타의든 사랑하는 하산과의 문제를 회피하다가, 결국 그는 충격적인 배신을 저지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

아들은 자신에게 실망하며 아버지를 동경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이기도 한 아들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를 이해하고 그 아픔을 알게 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성장의 과정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낸 이 소설에 큰 찬사를 보내고 싶다.

위대한 웅변가들처럼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감동을 훨씬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국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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